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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틴숲 학살사건
글쓴이 : 김용연 날짜 : 2010-04-14 (수) 15:21 조회 : 5692

2010년 4월 10일 레흐 카친스키 폴란드 대통령과 정부 주요관리들이 카닌 숲을 방문하려다 비행기 사고로 사망하면서 '카틴 숲 사건'을 많은 이들이 되새기는 계기가 되고 있다.



카틴(Kathyn)숲 사건은 러시아가 폴란드를 점령하면서 장차 반소(反蘇)운동과 폴란드 민족운동을 벌여나갈 가능성이 농후한 폴란드군 장교 2만 여명을 카틴 숲에서 학살한 사건이다.



당시 역사를 간략히 개략하면 독일은 폴란드를 침공하기 전에 소련과 독`소 불가침 조약을 체결하면서 이면협약으로 폴란드의 부그강과 나레프강을 따라 이어진 경계선 동쪽은 소련이 차지하고 독일은 서쪽을 차지하기로 한다. 1939년 9월 1일 독일군을 폴란드를 침공하고 소련은 9월 17일폴란드에대해 선전포고를 하고 폴란드 영내로 진격해 들어가, 사전에 약속된 대로 부그강변에서 진격을 멈추고 독일과 함께 폴란드를 분할 점령하였다.



이 점령시기 독일군은 점령한 폴란드 서쪽 지역에서 유태인에 대한 인종청소를 하고, 소련군은 점령한 동쪽지역에서 전시 소집된 폴란드군 예비역 장교들을 카틴숲에서 잔인하게 살해하고 암매장하는 카틴숲학살을 자행하게 된다.



카틴 사건은 발생 당시에도 철저하게 비밀에부쳐졌으며 3년이 지난 1943년 독일 나치가 카틴 지역에서 4천 100구의 시체를 발견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카티 사건의 주동자인 스탈린은 "폴란드가 독립국으로 일어설 수 없도록 폴란드 엘리트의 씨를 말릴 것"을 명령한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대전이 끝나고서도 폴란드가 공산 소련 치하로 들어감에 따라 40여 년 간 폴란드에서는 카틴 사건에 대한 언급은 금기시 되었다. 하지만 소련은 이 카틴숲학살을 자신들의 소행이 아닌 독일의 소행으로 날조하고 덮어 씌웠다가 1990년 구 소련이 해체되면서 비로서 자신들의 만행을 시인하고 폴란드에 공식적인 사과를 하게 된다.



출처: http://blog.ohmynews.com/heliophoto/



폴란드의 아픔을 그대로 보여주었던 카틴숲을 폴란드 대통령 내외가 방문하여 추모하려다 사고를 당하였으니 폴란드 국민들의 아픔은 더욱 커졌겠지요.



이와 비슷한 사건이 한국에도 있습니다. 바로 노근리양민학살사건입니다.



6.25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7월 노근리의 철교 밑 터널, 속칭 쌍굴다리 속에 피신하고 있던 인근 마을 주민 수백 명을 향하여 미군들이 무차별 사격을 가하여 300여 명이 살해되었다.



1999년 9월 미국 AP통신은 당시 미군은 노근리 부근에서 발견되는 민간인을 적으로 간주하라는 명령을 받았으며, 이 명령에 따라 학살사건이 발생했다고 보도하였다. AP통신의 보도는 비밀해제된 당시 군 작전명령 중에서 '그들(피난민들)을 적군으로 대하라'라는 명령의 원문(原文), 미군 제1기갑사단과 미군 육군 25사단 사령부의 명령서 등 미군의 공식문건 2건과 참전미군 병사들의 증언 등을 토대로 한 것입니다.



이 사건은 국내외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이 외부에 처음 드러난 것은 1960년 민주당 정권 때 유족들이 미군 소청심사위원회에 소청을 제기하면서였다. 당시 미군측은 소청을 기각하였고, 이 사건은 그대로 역사의 미궁 속에 묻힌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1994년 4월 '노근리양민학살대책위원회'위원장 정은용이 유족들의 비극을 담은 <><그대 우리의 슬픔을 아난가>>라는 실록 소설을 출간하면서 이 사건은 다시 일반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당시 이 책에 주목한 한겨레신문은 마을 주민들을 인터뷰한 기사를 그해 5월 4일자로 싣고, 7월 20일자에는 다시 집집마다 '떼제사'를 지내는 모습을 스케치기사로 실었다.



그 후 월간지 <><말>>이 이 사건에 대해 본격적인 취재를 시작하여 그해 7월호에 <6.26참전 미군의 충북 영동 양민 300여 명 학살사건>이라는 제목으로 자세한 내막을 기사화하였다. 1996년 MBC는 <><말>>지의 취재내용을 바탕으로 시사고발 프로그램에서 다시 이 사건을 재조명하였다. 그러나 이후 국내 어떤 언론도 이 사건을 주목하지 않았다. 다만 <><말>>지가 1999년 6월호에서 <미 제1기병사단 병사들 마침내 입 열다> 제하의 기사로 다시 속보기사를 실었을 뿐이다.



1999년 말 유족들의 미국 방문을 계기로 미육군성은 이 시건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쥬족을에 대한 보상분제를 한국측과 협의할 예정임을 밝혔다. 2000년 1월 9일 미국측 대책단장인 루이스 칼데라 미육군성 장관과 민간전문가 7명을 포함한 18명의 미국측 자문위원단이 내한하여 12일까지 한국측 조산반으로부터 사건개요 및 조사상황을 청취한 뒤 충청북도 영동의 사건현장을 찾아 피해 주민들의 증언과 요구사항을 들었다.


(출처: 네이버백과사전)



당시 미국 클린턴대통령은 노근리사건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명하는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우리 정부에서는 국회를 통과한 노근리사건 희생자 심사 및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을 2004년 3월 5일 법률 제7175호로 제정`공포하고, 노근리사건 희생자에 대한 심사를 실시하여 2005년 5월 23일에는 노근리사건 희생자 심사 및 명예회복위원회를 개최하여 상해, 사망, 실종 등 희생자 218명과 유족 2,170명을 확정하였다. (출처:노근리사건홈페이지 http://www.nogunri.net/ )



노근리 사건을 다룬 영화가 '작은 연못'이라고 합니다.



폴란드도 러시아(옛 소련), 독일의 강대국 사이에 끼어 있어서 많은 침략을 받아 왔습니다. 우리 나라도 강대국 사이에 끼어서 수 없는 침략을 받아왔고 그 때만다 한반도가 전쟁터가 되어서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갔습니다. 다시는 이러한 역사가 우리나라에서 반복되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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